송건호 옆에 방상훈? -김영진

제 목
송건호 옆에 방상훈? -김영진
작성일
2001-12-24
작성자

이름 : 김영진 ( ) 날짜 : 2001-12-24 오후 10:40:44 조회 : 178

송건호 옆에 방상훈?

청암 송건호 선생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신문에서 읽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조영래 변호사의 부음 기사를 읽었을 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같잖은 언론과 언론인들이 세상을 허탈하게 난도질하는 이 땅에 송건호라는 팻말마저 보이지 않게 된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한겨레>에 실린, 송건호 선생의 부음을 알리는 기사를 읽다가 저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습니다. 그 기사 마지막 문단 일부를 옮겨봅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정순(71) 씨와 준용(41·(주)와이에스파트너스 컨설턴트), 제용(36·조선일보사 광고국) 씨 등 2남4녀가 있으며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뭐가 이상하냐고요? 뭐가 이상해서 쓴웃음까지 지었냐고요? 송건호 선생의 차남 제용 씨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눈여겨 다시 읽어보세요. 그 이름도 찬란한 <조선일보>의 광고국이라지 않습니까? 이런 부조화를 보면서 어찌 쓰디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송건호 선생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 부조화를 당연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조선, 동아 같은 족벌 수구 신문의 대척점에 서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의장을 맡아 <말>지를 발행하고, 국민주 신문 <한겨레> 창간을 주도했던 사람이 바로 청암이었습니다. 붓으로 온몸으로 자유 언론, 민주 언론을 이끌었던 사람이 다름아닌 송제용 씨의 아버지였다는 말씀입니다.

송건호 선생이 자기 아들의 <조선일보> 입사를 과연 받아들였을까요? 참 궁금한 일입니다. 선생은 전두환 신군부에게 당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90년대 들어 온몸이 마비되는 파킨슨병을 앓아왔다고 합니다. 제용 씨의 <조선일보> 입사는 그의 나이로 추정컨대 선생이 병석에 누운 뒤의 일인 듯합니다. 그렇게 들어갈 언론사가 없더란 말입니까? <조선>만큼 봉급을 많이 주는 언론사도 찾기 힘들었다? 아버지의 병 치료와 간호를 위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했다? 생각할수록 답답해집니다.

선생의 땀과 눈물이 보태져 만들어진 <한겨레>와 <말>은 올해 내내 <조선일보>의 추악한 과거와 현재를 세상에 바로 알리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바로 보게 하는 일에 이들 언론들은 온 힘을 쏟았습니다. 송건호 선생의 아들 제용 씨가 그 <조선>의 한복판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면 우리는 ‘상식’을 버려야만 할 것입니다.

그는 거기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송건호 선생의 차남 송제용 씨는 지금 <조선일보>에서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송건호 선생 부음 기사가 실린 <한겨레> 1면 하단에는 선생 장례식을 사회장으로 치른다는 내용의 광고가 보입니다. 거기에 올려진 장례위원장, 고문, 집행위원장, 부위원장, 장례위원 등의 이름을 죽 훑어보다가 저는 또 한번 쓴웃음을 짓고 말았습니다. 고문 명단에 ‘방상훈’이라는 이름이 떡 하니 올려져 있는 겁니다. 방상훈이 누구냐고요? 그 유명한 <조선일보> 사장 아닙니까. 그렇게 올려놓을 이름이 없어 방상훈을 올려놓는답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고도 정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송건호’와 ‘방상훈’ 사이에는 ‘송제용’이 있군요. 에라-

-군산영광여고 김영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