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라에 계신 공 병우 박사님-이대로
이름 : 이대로 ( idaero@hanmail.net) 날짜 : 2001-05-09 오후 7:53:59 조회 : 196
하늘 나라에 계신 공 병우 박사님
님이 이 땅을 떠나신 지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저는
제 처자식과 함께 삼청 공원에 가서 약수을 뜨고 난 뒤 님이 사시
던 집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박사님은 안 계시지만 님이 마지막 사
시던 집, 제게 셈틀을 손 수 가르쳐 주신 2층 방을 밖에서라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자주 삼청 공원에 갑니다.
돌아가시기 전 해, 님은 저를 삼청동 집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삼청 공원의 약수가 좋고 또 그 근처 국밥을 잘하는 집이
있으니 자주 오라고 하셨습니다. 제게 셈틀을 가르쳐서 전자 통신
을 이용해 한글사랑운동을 하게 하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셈틀로 글쓰기를 배워 전자 통신을 이용해 한글 기계화운동
에 앞장서라는 말을 여러 번 했으나, 다른 일로 바쁘고 시간이 없다
며 미루기만 하는 제게 “이제는 마지막이다. 난 언제 이 세상을 떠
날지 모른다. 내가 가르쳐주겠으니 우리 집에 와서 배우라”며 강력하
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10시가 넘어야 제 자유시간입니다. 밤 11
시도 괜찮겠습니까?”라고 시간 핑계를 댔습니다. 그런데 박사님은
“좋다. 내가 기다리겠다”고 하셔서 저는 빠져나갈 수 가 없었습니다.
그 해 여름은 유난스럽게 더웠습니다. 제가 밤 11시 님 댁으로 가
초인종을 누르면 웃옷을 벗은 채로 반갑게 뛰어 나오셔서 저를 맞
이해 주셨고 90이 다 된 할아버지 선생님 앞에 50이 다 된 학생은
어린애처럼 고분고분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님은 그렇게 저를 가르쳐
주시고 그 해 겨울 감기 증세로 입원하신 뒤 일어나지 못하시고 다음
해 봄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님의 마지막 제자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밤 10시면 주무시는 데 제게 셈틀 사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미리 주무시고 밤 11시부터 12시까지 개인 과외 공부를 시키셨습니다.
그 때 낮에 박사님을 자주 찾아가 뵙던 제 후배 김 두루한 선생으로 부
터 ” 박사님이 요즘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선배님이 컴퓨터를 열심
히 배워서 기쁘다며 낮에 주무신 다음 기다리고 계십니다. 결석하지
마십시오” 라는 말을 듣고 하루도 안 빠지고 찾아가 배웠습니다.
그러나 당신 혼자 매일 통신에 글을 올리시기 외롭고 힘드니 저를 가
르쳐서 함께 전자통신을 통한 한글 운동을 하자는 님의 뜻을 알면서도
바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뒤 청개구리처럼 후회하면서
바로 하이텔 통신에 가입해 오늘까지 님을 대신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셈틀 통신 공간에 글을 쓰고 읽고 있습니다.
공 박사님! 고맙습니다!
못난 저를 사랑해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알아주셨고 참 삶을 보여주셔
서 고맙습니다. 눈 먼 자에게 눈을 뜨게 하시고 뜻있는 자에게 길을 가
르쳐 주셨습니다. 당신만 재미있게 살려고 하지 않고 함께 잘 살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큰 사람, 님을 만나고 모시고 함께 국어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을 매우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젊은 사람들과 매일 통신 공간에서 만나 즐겁게 보람된 시간을 갖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공 박사님! 뵙고 싶습니다.
님은 병원에 문병도 오지 말라 하셨습니다. 님은 돌아가신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엔 삼청동 2층
방에서 셈틀 글쓰기 하시는 모습만 있고, 제 마음속엔 님이 살아
계십니다. 또 셈틀 통신 공간엔 아직도 님의 발자취가 여기 저기 보
이고 있습니다. 님의 글이 있고 님을 기억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
다. 님이 연세 의대 병원에서 돌아가시고 육신을 학생들 교육용으로
바치셨기에 제 딸을 그 의대에 보냈고 자주 그 학교에 들르게 되어
더욱 님 생각을 합니다.
님이 가르쳐 키운 나모 박 흥호 사장이 요즘 잘 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보면서 강 태진 사장도 잘 하고 있고 미국에 있는 강 영우
박사가 부시 행정부에서 일하게 될 것 같다는 보도 기사를 보면서
님 생각이 더욱 납니다. 지난해 한글과 검퓨터 전 하진 사장을 만
났을 때 ” 제가 회사에 오니 직원들이 모두 한글 운동꾼 같더군요”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에게 그들이 박사님 제자들임을 말하고
한글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해달라 부탁도 했습니다.
1988년 박사님이 미국에서 오셔서 한글문화원을 열고 문 제안 선
생님과 저에게 [ 셈틀로 글쓰기를 배워라. 기가 막히게 편리하다 ]
시며 셈틀 배워 사용하기를 권하셨을 때 70대인 문제안 선생님이 [이
제 배워서 뭐합니까. 다 늙었는데 ...] 하시니까 [무슨 말이냐 젊은 사
람이... 나는 더 늦은 80대에 배워 이렇게 한글 기계화 연구에 힘쓰지
않느냐]시며 호통치셨습니다. 그 뒤 문 선생님은 바로 셈틀 공부를
하시고 문제안식 글꼴까지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더 젊은 저는 바로
따르지 못했습니다.
한글학회에 셈틀을 그냥 주시며 사용하라고 했을 때 배워 쓸 생각을
하지 않고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 때 님은 외솔 선생이 살아 계셨다
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가르침과 좋은 영향을 주셨습니다. 늦었지만 이제 저도 한글학회도
셈틀 없이 하루도 못살게 되었고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박사님이 살
아 계실 때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부끄럽고 죄스런 마음이
이제야 듭니다.
그러나 아직도 선각자 선구자이신 님의 뜻과 나라 사랑 한글 사랑
정신과 한글 제작 원리와 과학정신에 가장 적합한 세벌식 조합형 한
글기계 사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두벌식 완성형을 고집하고 한자혼용
을 하는 정치인과 학자들이 판치니 답답하고 서글픕니다. 그리고 박
사님의 과학 탐구정신, 근면 박애정신, 자주 문화정신을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이 많고 이기주의 사대주의자가 판치니 앞이 캄캄합니다.
박사님! 님의 뜻을 이어가고 온 누리에 펴려는 저에게 힘과 지혜와
자심감을 주십시오! 올해엔 꼭 동지들을 모아 님이 하늘 나라에서
편안히 계시도록 표나는 일을 해 보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또 돌아가신 날을 맞았으나 님의 무덤도 없고 님을 추모
하는 자리도 없으니 제 마음속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님이 즐기시던
셈틀 통신을 통해 하늘 나라에 계신 맑은 술과 큰 절 올립니다. 음향
하소서!
2001. 3. 7 새벽 마지막 제자 이 대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