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벨트를 착용하지 맙시다-김영진

제 목
안전 벨트를 착용하지 맙시다-김영진
작성일
2001-07-14
작성자

이름 : 김영진 ( seulk@chollian.net) 날짜 : 2001-07-14 오후 5:21:58 조회 : 181

안전 벨트를 착용하지 맙시다

‘안전 벨트’를 ‘착용’하라고 합니다. 지난 4월부터는 ‘안전 벨트’를 ‘착용’하지 않다가 교통 경찰 단속에 걸리면 3만 원씩 벌금을 물린다고도 합니다. 운전자 몸의 안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 주머니 속에 든 돈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안전 벨트’를 꼭 ‘착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안전 벨트’를 결코 ‘착용’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안전 벨트 착용’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짐짓 모르는 체할 겁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참 말들 멋대가리 없이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전 벨트’까지는 그래도 들어줄 만한데, ‘착용’이 뭐란 말입니까? 안전모도 쓰라고 하지 않고 착용하라고 하더니 안전띠까지 착용 타령입니다. 저는 안전띠를 매고만 다닐랍니다.

어려운 한자말이나 영어로 권위를 세우려는, 배운 사람들 꼬락서니가 괘씸하기 그지없어요. 어찌된 일인지 사회가 민주화할수록 말을 쉽게 하려 해야 할 텐데 전혀 그럴 기미가 안 보여요. 목욕탕이고 극장이고 가보면 ‘대인, 소인’이란 말이 붙어 있습니다. ‘어른, 어린이’ 같은 말을 몰라서 그렇게 쓸까요? ‘대인’은 대인국에 사는 사람이고, ‘소인’은 소인국에 사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연소자 관람 불가’라고 할 때 연소자는 또 어떤 사람일까요? ‘금일 휴업’이라고 써놓은 가게를 봐도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이렇게 써놓는 사람들은 말할 때는 어떻게 할까요? ‘오늘’이라고 말하지 않고 ‘금일’이라고 할까요? 이 사람들에게 ‘어제’는 분명 ‘작일’일 것입니다. ‘머리’는 ‘모발’일 것이고 ‘옷’은 ‘의상’일 것입니다. ‘키’도 ‘신장’이어야 후련하고 ‘몸무게’는 꼭 ‘체중’이어야만 마음이 놓일 것입니다. 귀뚜라미가 ‘실솔’이고, 그네가 ‘추천’인 것을 알면 이 사람들 가만 있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다섯 살 먹은 제 아들 세울이가 저를 퍼뜩 놀라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참 궁금한 게 많은 세울이가 수염을 깎고 있는 저를 보더니 면도기를 가리키며 “아빠, 그거 뭐야?” 하기에 “응, 면도기.”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해요. 그러더니 “왜 수염깎이가 아니지?” 하는 겁니다. ‘손톱깎이’ 가져오라고 해서 손톱도 깎아주고, 며칠 전에 연필을 돌려서 깎게 만들어진 ‘연필깎이’를 사주었더니 그 이름들로 ‘수염깎이’를 연상한 모양입니다. 저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면도기로 면도한 게 아니라 수염깎이로 수염을 깎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전띠도 착용하는 게 아니라 매는 것이지요.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안전 벨트를 착용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