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석을 인터뷰하다 – 안태호

제 목
한효석을 인터뷰하다 – 안태호
작성일
2014-05-21
작성자

[5월_인터뷰] 신문이름이 콩나물이면 좀 어때요?
인터뷰 2014/05/14 11:58

신문이름이 콩나물이면 좀 어때요?

- <콩나물 신문> 한효석 상임이사 인터뷰

안태호 (부천 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콩나물신문? 혹시 식품회사에서 만드는 기관지를 떠올렸다면, 땡! 틀렸다. 콩나물신문은 올해 2월 부천에서 창간한 지역신문의 이름이다. 창간 3개월을 갓 지난 콩나물신문의 한효석 상임이사를 콩나물신문이 자리한 부천 약대오거리의 담쟁이문화원에서 만났다. 협동조합으로 출발한 지역 언론의 이야기를 통해 미디어 활동 일반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시종일관 유쾌하고도 귀를 쫑긋 세우는 자리였다. 언론 종사자였던 것도 아닌데, 한효석 이사는 지역 언론의 문제와 새로운 언론이 가져야 할 상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냈다. 협동조합 지역 언론의 가치와 지향, 현실적인 고충과 극복방안, 만드는 사람들의 즐거움, 1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비전까지.

예상대로 지역에서 신문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즐겁다’고 했다. ‘행복하다’고 했다.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했다. 언론으로서의 ‘완성도’를 걱정하는 말에, 그런 조급증이 활동을 그르친다며 넉넉하게 웃는다. ‘조인성’이 목표라는 그의 말에 인터뷰 하던 이들 모두 한참을 웃었다. ‘조인성’은 콩나물신문의 원대한 포부 중 하나로, ‘조선일보 인수 성공’의 줄임말이란다. 한 이사는 ‘장삼이사’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 만들어나가는 언론, ‘위대한 평민들’의 이야기를 잠시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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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콩나물신문!

안태호(이하 안) : 창간 3개월이 지났다. 6호까지 나왔는데 그동안의 소회랄까, 상황을 이야기해준다면?

한효석(이하 한): 자리를 잘 잡는 것 같다. 편집장이 3개월마다 돌아가는 시스템이어서 두 번째 편집장이 일을 맡는 시점이다. 실무 하중을 고려해 편집팀을 세 팀으로 운영한다. 2~3주에 한번 만드는 식으로. 힘이 덜 들고 덜 벅차다. 생업을 이어가면서도 할 수 있다. 호별로 팀장이 다르다. 호별 연계성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저절로 해결됐다. 1호와 2호, 2호와 3호가 동떨어진 느낌이 있어서 이후에는 팀장들이 회의할 때 서로 참석한다. 어떻게든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갈수록 자리가 잡히고 있어서 흐뭇하다.

편집위원 중에는 신문 얘기 나오면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해 한다는 것을 지난 3개월간의 소회로 볼 수 있다. 우리가 늘 그런 얘기를 한다. 만드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신문은 읽는 사람도 행복하지 않다. 행복한 기운을 느낄 수 있어야 성공한 신문이다. 쓰는 사람이 억지로 쓰면 읽는 사람도 느끼니까. 내가 교사를 해보니 교사가 이해하지 못한 걸 절대 가르칠 수 없더라. 근데 이해한 사람은 아무리 복잡한 것일지라도 쉽게 이야기를 한다.(*필자 주 : 한효석 이사는 20년간 국어교사로 근무했다)

안: 지역에서 반응은 좀 어떤가?

한: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지역 반응이라는 말 자체가 방구깨나 뀌는 사람들 이야기다.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을 비롯한 지역의 유력인사들 말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물어보라. 지역 언론이 뭐가 있는지 알 리가 없다.

안: 그래도 콩나물에서 인터뷰를 했거나 자기 이야기가 실린 분들이 있지 않나

한: 그분들은 도통 긴장감이 없다. 우리 신문을 대하는 태도가. 콩나물 신문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웃음이 터지며 무장해제가 되어 버린다. “나도 시금치 신문 만들까?”하며 신문 알기를 우습게 안다(웃음). 금방 친해지기도 하고. 일단 이름이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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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인터뷰 하고 있는 한효석 이사(좌), 안태호 팀장(우)

콩나물이면 어떻고, 고사리면 어때?

안: 이름에 대한 소개가 필요하겠다. 왜 콩나물이었나?

한: 콩나물은 많은 후보 중 하나였다. 민주신문, 주민신문 등이 이름값을 못 하기도 하고 시민신문도 많지만 건강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우리는 거창한 평화, 희망, 시민 같은 추상적인 단어는 쓰지 말자고 합의를 봤다. ‘벼룩 신문이 있으니까 우리는 메뚜기 신문도 가능하다’, ‘담쟁이 신문은 어떠냐’는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단어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더라. 수많은 이름들이 후보에 있었지만 사람마다 달랐다. 그러다가 이름이 콩나물이면 어떻고 고사리면 어때? 라고 불쑥 던졌는데 스쳐지나가는 단어에 사람들이 꽂혔다. 그래서 콩나물이 됐다. 이름 먼저 짓고 나중에 의미를 붙였다. 서민적이다, 서로 기대서 큰다, 등등.

안: 부천 인구 밀도가 빽빽한 게 꼭 콩나물시루 같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한: 하여간 의미는 나중에 붙였다. 사실 우리는 속으로 계산된 게 있었다. 부천 콩나물, 함양 콩나물, 산천 콩나물 등 콩나물이 전국적 브랜드가 되기를 바랐다. 경상도에서도, 전라도에서도 싫어하지 않는 이름으로 정하려고 했다.

안: 와, 그렇게나 원대한 포부가 있었던 건가?

한: 더 큰 포부가 있다.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장삼이사가 모여서 하는 이유도 있다. 우리가 협동조합으로 자리 잡고, 안양에 콩나물이 생긴다면 노하우를 알려줄 수 있다. 10년 내에 전국에 20개 정도 콩나물 신문사가 생기면 <콩나물 일보>를 하려고 한다. 한겨레도 경향도 삼성 광고를 받다보니 쉽게 비판하지 못한다. 그러나 협동조합 신문사가 전국에 퍼지면 연대해서 일보를 만드는 건 순식간이다. 그때 가서 한겨레를 인수하든 조선일보를 인수하든 인수하자는 얘기를 한다. 그야말로 밑에서 위로.

안: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일 년 내에 망할 수도 있다고 하더니 야심만만하다

한: 일단 1~2년 안에 홀로 서는 게 과제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한다. 만약에 안양 콩나물이 생긴다면(꼭 콩나물이라고 이름을 안 해도 되겠지만, 이왕이면 쓰면 좋겠다. ‘벼룩신문’하면 이미지가 탁 떠오르듯이 콩나물도 그렇게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출자를 할 수 있다. 초기에 어렵고 힘든 부분을 도와줄 수 있다. 우리는 2년 내에 살아남아야 하고 5년 내에 지역신문을 세 개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10년 뒤에는 2~30개 이상의 콩나물이 만들어지는 꿈을 꾼다. 그 후에 콩나물 일보를 만들고 싶다.

안: 협동조합 언론의 취지도 함께 이야기해 달라.

한: 한 마디로 쉽지가 않다. 순천 광장신문이 협동조합 종이신문 1호다. 우리가 2호. 앞서 꺼냈던 장삼이사 얘기를 하자면 협동조합은 1인 1표다. 돈을 많이 출자했던 그렇지 않던 모든 조합원에게 동등한 의무와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방송이든 신문이든 지역에서 만들게 되면 주도하는 사람들이 못 내려놓는다. 신문으로 예를 들자면 조합원이 100명, 200명이 되어도 신문은 우리끼리 만들겠다는 거다. 조합원들에게 신문을 만들 기회나 방향, 권리를 주지 않는다. 말하자면 도구로 쓰게 된다. 그러니까 마을미디어로 방송을 하는 사람들도 조합원들 믿고 서툴더라도 그들에게 방송할 권리를 줘야 한다. 조합원이 단순한 후원회원으로만 남으면 안 된다.

안: 전문성이나 미디어로서의 만듦새를 생각하면, 참 어려운 지점이다.

한: 그래서 실패하는 거다. 시민들을 삶의 주체로 내세우지 않고 수단으로 삼으면서 자기들만 주체가 된다. 그들을 도구로 삼으면 안 된다. 마을미디어로 협동조합을 꿈꾸든, 방송을 하든, 신문을 만들든 모든 사람들이 주체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이상 뭐든 실패하게 되어있다.

평범하게, 위대하게 – 장삼이사들이 만든 신문

안: 조합원들 면면은 어떤가

한: 새누리당 당원도 있고 진보당 당원도 있고, 자영업자, 백수, 공무원 등 스펙트럼이 넓다.

안: 생활인의 비중이 높은가? 어쩐지 단체 활동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한: 꼭 그렇지는 않다. 아, 지향을 말 안했다. 우리가 처음 출발할 때 장삼이사가 모여 신문을 만든 이유가 부천에서 신문을 만들었는데 ‘어느 특정 정당이 모여서 만들지 않았다더라. 근데 상근자 월급도 주고 재밌게 만든다더라.’하면 다른 지역에서 자극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출발할 때 신문기자를 배제했다. 신문기자가 없는 지역에서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우리는 신문도 들쭉날쭉하고, 오자도 많고 엉성하지만 ‘점점 자리 잡더라. 물어물어 만들었다더라.’ 하며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일부러 모델을 만든 것이다. 조금씩 사람을 넓혀 가며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조합원이 다양하다.

안: 신문제작에 참여하는 조합원 범위는 어떻게 되나?

한: 무조건 열어둔다. 이사 10명이 있지만, 조합원들에게 편집회의는 물론이고 이사회까지 열어두고 발언기회를 보장한다.

안: 사람들이 실제로 참여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한: 생업이 있으니까 그렇긴 하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자신의 주변 이야기를 취재하겠다거나 글을 써보겠다고 나서고 있다. 물론, 전문성 문제가 있다. 경험이 없으니 서툴 수밖에. 기다려야 한다. 어떻게 관점을 잡아야 할지 등을 알려줘야 한다. 소위 전문성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꾹꾹 눌러야 한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성질나고 급해도 눌러서 기다려야 한다.

안: 조합원 대상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가?

한: 글쓰기나 사진 강좌를 기획하고 있다. 종이 신문은 한정된 지면이라 쉽지 않은데 인터넷 신문은 공간이 무한하니 전 조합원에게 글을 쓸 수 있는 기자 자격을 부여한다. 알고 보면 다음 카페에 글 올리는 사람은 쉽게 할 수 있는 거다. 신문이 자칫하면 글 잘 쓰는 사람들 잔치밖에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조합원들에게 원하는 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다. 예를 들어 카페에 와서 커피가 맛있으면 사진을 찍어서 콩나물 신문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라는 거다. 기사가 별것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맛있는 커피집 하나 올리는 것이다.

안: 주변에 대한 관심과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말인가.

한: 맞다. 개인이 알고 있는 정보를 올리고 나누는 거다. 처음에는 사진만 올리겠지만 점점 글로 풀어쓰기 시작할 것이다. 길게 보면 볼륨이 생기는 거다. 조합원 기자들이 지금 올리는 것과 20년 뒤에 쓰는 것은 달라질 것이다. 근데 오마이뉴스는 심사를 한다. 그러니까 한두 번 쓰다가 채택을 못 받으면 안 쓰게 된다. 우리는 종교적 이념이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만 아니면 오탈자까지도 건드리지 말자는 취지이다. (온라인 신문에서)나중에 스스로 보면서 알도록.

옆집 아줌마는 어떻게 밀양과 만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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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안태호 팀장

안: 자칫 언론으로서의 신뢰 문제가 있지 않나. SNS나 일반 커뮤니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라면 볼 게 없다는 얘기가 나오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된다.

한: 맞다. 살짝 걱정이 된다. 근데 오히려 인터뷰하고 취재한 관공서 행사 기사보다 개인적인 기사의 조회 수가 더 높다. 실제로 개 찾아 달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조회 수가 높게 나왔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은 정말 사소한 이야기가 더 재밌다. 거창한 담론보다도. 옆집에서 아침에 무엇을 먹고, 앞집 아줌마가 왜 싸웠는지가 궁금한 거다. 4대강 비리 이런 것보다. 지역신문이 옆집 아줌마 얘기를 다루지 않는다면 어디서 하나.

여기서 좀 더 나아가보자. 한 개인이 꿈꾸는 일상이 온 우주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강정마을 같은 이야기는 부천하고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그런 사건이 부천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담고 싶다. 말하자면 공통적인 게, 개인의 행복을 국가가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거다. 그런 식의 이야기라면 부천에서도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일이다. 어디든 개발 때문에 개인의 행복을 짓밟는다면 강정, 밀양과 같은 일이다. 그 속에서 인류의 보편가치를 담고 싶은 거다. 강정마을이라든가 다른 나라의 슬픔과 기쁨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을 잘 계산해서 담아내고 싶지만 아직까진 역량이 부족하다.

안: 구조적인 힘이나 강압이 개인의 삶과 만나는 부분들을 다루고 싶다는 말씀이다. 사실 지역신문들은 대개 정치권에 있는 얘기들만 담아내서 인기가 없다. 저게 도대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나 쳐다보기만 해서.

한: 맞다. 말하자면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데서 밀양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개인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어주는 사람이 없다. 콩나물은 그런 것들을 이어주고 싶다. 노인들이 한전과 싸우는 것이 정서적으로 안타깝지만 절실하게 와 닿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연결고리를 이어주면, 천안함이나 세월호의 부모처럼 국가 앞에서 희생된 사람의 이야기로 공감할 수 있다. 우리가 미장원 아줌마를 인터뷰 한다면, ‘저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다’라는 복선을 깔고 싶다. 서민들의 삶을 인터뷰하고, 취재하지만 아직까지 그 연결이 서툴러 불만스럽다.

안 : 주변에서 본 바로는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이 무척 재밌어 한다. 그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한: 자기가 삶의 주체가 된다. 그러니까 재밌는 거다. 만드는 사람들이 추진력을 가진다. 제안하고 구현하며 삶의 주체가 되니 행복하다. 사람을 귀하게 본다. 수단으로 보지 않고. 나랑은 다르지만 어쨌든 강요하거나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충분히 얘기했는데도 그 사람이 고집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읽기만 하는 신문은 가라

안: 편집이 파격적이다. 준비호에서는 한 면을 통째로 종이배 만들기를 넣었고, 이번호에는 1면의 절반을 카네이션 만들기에 투여했다. 제한된 지면에서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처음엔 우리도 쉽지 않았다. 한 두 번 하다 보니 재밌어졌고, 이제는 당연해졌다. 신문 읽을 게 없으면 가지고 놀거나 방석으로 만들기라도 하지 않나. 정 안되면 생선 튀길 때 받침대로라도 써야하지 않나 해서 접시를 인쇄하려고 한 적도 있다. 어떤 용도로라도 쓰는 게 그냥 버려지는 것보다 낫다. 들은 바로는 전라도 어느 신문에서 뒷장을 비운 적이 있었다. 노숙인들에게 ‘오늘 하루라도 당신들에게 이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고 하더라.

안: 판매현황은 어떤가?

한: 미진하다. 창간이 되면 먹고 살 줄 알았다. 일 년 정기구독료가 6만원, 한 달에 50명의 정기 구독자를 확보하면 300만원에 조합비도 있으니까. 상근자 인건비와 신문 찍는데 드는 돈을 확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조합원들이 신문을 만드는 데는 열정적인데 조합원 확보나 정기 구독자를 만드는 것은 잘 하지 못한다. 남들한테 돈 얘기를 잘 못한다. 조합원이 140명이니까 한 달에 한명만 설득해도 한 달 50명은 충분하다고 봐서 ‘5월부터는 돈 걱정 없이 신문 만들겠구나.’ 했는데, 5월 정기구독자 확보 수가 12명이더라. 지금 16면 격주간으로 나가고 있는데 8면으로 내면 주간도 가능하다고 본다. 정 안되면 한주는 4면이라도 해서 주간 체제를 완성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공무원들을 씹으려고 한다. 요번엔 또 누가 씹혔을까 궁금해서 신문을 구독하게.

안: 진지하게 얘기하시니 진담 같다.(웃음)

한: 진지하다. 씹지 않으면 눈 여겨 보지 않으니까.

안: 보통 광고를 받으려면 비판한다고 한다.(웃음) 광고주들이 광고로 무마하려드니까. 혹시 외부필자에게 원고료를 지급하나?

한: 원칙은 그런데 전부 지급하지는 못한다. 재능기부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돈 없으면 부탁하지 말아야지. 돈이 없는데 부탁하면 그 사람의 역량을 공짜로 내놓으라는 것밖에 안 된다. 돈이 적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할지언정 지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나중에 재정적으로 넉넉해지면 어떤 파격이 생길지도 모른다. 돈을 꽤 많이 준다는 파격이 생겼으면 좋겠다.

안: 아까 말씀 중에 콩나물 신문은 처음이기 때문에 보고 배운 게 없다고 하셨다. 그래도 영향 받은 모델이나 참고한 언론이 있는가?

한: 수많은 언론을 보고 배웠다. 저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그런 거. 저 사람들 반대로 하면 흥한다는 거.

안: 그 와중에도 배울만한 곳을 꼽는다면?

한: 경남도민일보, 대전 월간지 토마토, 전라도 닷컴 정도?

안: 어떤 점에서?

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예전에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의 2014년 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도 그런 걸 하려고 한다. 그 당시로는 파격적일 만큼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낸 잡지들이다. 그런 걸 구현하려고 한다.

안: 경남도민일보는 다른 측면에서 참고한 것이 있을 것 같다.

한: 경남도민일보도 파격을 많이 시도한다. 지역 신문이 살아남으려면 지역을 담아야 하고, 검색이 되지 않아야 한다. 서울에서 경상도 이야기가 똑같이 검색이 되면 이미 지역신문이 아니다. 중앙 언론에서 검색이 안 되는 기사를 보유해야한다.

안: 마을미디어 활동에 해주고픈 말은?

한: 아까 말했다시피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 즐거워야 한다. 나만 귀하면 안 된다. 주도하는 사람만 귀하면 안 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조합원들이) 도대체 신문의 정신이나 방향을 알까, 나처럼 오랫동안 고민해오지 않았는데 가능할까’.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지만 생각 외로 훌륭하다. 장삼이사 2~30명이 면면이 친해지고 보니 너무 위대한 사람들이다. 오히려 다른 곳에서 벤치마킹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할 만큼 위대한 평민 20명이 모였다. 콩나물 신문에 50대가 세 명 있는데 말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50대 세표가 40대 한 표라고 생각하고 주도하려고 하거나 잔소리 하려고 하지 않고. 자제하려고 한다.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게 콩나물의 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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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웃으며 훈훈하게 인터뷰 마무리~

두 시간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눴지만, 녹음기가 꺼진 후에도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콩나물신문은 권력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2년 이상 조직에 남아있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지역 언론 운영은 곧 권력과의 유착관계가 생길 개연성이 높아진다는 거다. 그래도 2년은 너무 짧은 거 아니냐고 했더니, 1회 연장을 통해 4년까지는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도록 정관에 못 박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찌 보면 지독하지만, 그 지독함에 어쩐지 믿음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이름부터 파격인 콩나물. 사람들이 만만해 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제일로 삼는, 이웃들의 얼굴과 사연을 담아내며 거대한 사회구조와 개인의 일상을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하고 싶은 콩나물의 실험이 꾸준히 오래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조인성’,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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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원, 이경숙, 마진호님 외 21명이 좋아합니다.

유병유 ㅎㅎ 조 인 성~^.^ 빠샤~
5월 21일 오후 8:47 · 좋아요 취소 · 3

윤혜민 ㄲ ㅑ~~멋있어요 쌤~~^^
5월 21일 오후 9:05 · 좋아요 취소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