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 조선족 동포를 도우려면
‘야만의 조국’ 언제까지
서경석(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집행위원장)
우리 교회 교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불법 체류 조선족이 한국 사람
에게 1천만원의 빚 독촉을 하러 갔다가 신고 당해 파출소에 잡혔는데 추방될 위
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내게 전화를 준 조선족은 늘 한국인에 대해 고마워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이러한 조선족 동포들을 생각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
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어느 나라나 극소수의 악독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문제
는 이런 악독한 자가 신고를 하면 공권력은 항상 이들의 편에 서서 무자비한 추
방을 국익의 이름으로 자행한다는 데 있다.
4월말까지는 불법 체류자 자진신고기간인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추방이 진행되
고 있다. 5월이 오면 사방에서 추방되는 불법 체류자의 3분의 2는 입국할 때 진
빚을 아직 갚지 못한 사람들이니 그들의 가슴에 한이 사무치게 쌓일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인이 유별나게 악한 탓인가. 아니다. 문제
의 근원은 한국정부의 암묵적인 불법 체류자 유지 정책에 있다. 지금 국내 체류
조선족의 90% 이상이 불법 체류하고 있는 것은 정부가 묵시적으로 불법 체류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선족은 인권이 무참히 유린당하고, 체불
노임도 받지 못하고 급기야는 잡혀서 추방당해야 했다.
지금 중국 동북3성에서 10만명의 탈북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바로 조선족이어
서 우리가 조선족을 잘 돌보면 간접적으로 탈북난민까지 돕는 것이 된다. 조선족
이 잘 되면 동북아평화와 통일에도, 국익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는 점을 온 국
민이 다 아는데 왜 공권력만 모르고 있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는 정책을 근
본적으로 바꾸어 90% 이상의 조선족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합법 체류로 유도하고
그래도 응하지 않는 극소수의 불법 체류자들만을 처벌해야 한다.
조선족 불법 체류, 정부가 방조
그러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 먼저 국내 체류 조선족의 총 규모를 지금보다 10만
명 정도 더 늘려야 한다. 우리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조선족이 해방 후 당연히
귀환해야 할 동포들인데 북의 김일성 정권이 수립되어 귀환길이 막혀 오지 못한
사람들임을 감안해야 한다. 그 대신 외국인 노동자의 수를 반으로 줄이면 된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할 일은 연수생 제도의 개혁이다. 기본급을 월 36만원에서
월 50만원으로 올리고 기간도 3년에서 1년을 더 연장할 것을 제안하다. 조선족
연수생의 숫자를 획기적으로 늘려 합법 체류의 길을 확 열고 대신 비정상적인 입
국통로는 봉쇄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송출비리의 근절이다. 조선족이 산업연수생으로 오기 위해서는
700만원에서 1천만원에 달하는 프리미엄을 내고 오는데 이 비리가 근절되지 않으
면 합법 체류는 가능하지 않다. 송출비리는 한국어시험제도를 도입하여 높은 점
수를 받은 사람부터 입국시키면 완벽하게 근절된다. 다만 시험관리를 상대방 국
가 송출업체에 맡기지 않으면 된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중국에 남아있는 1만6천가구의 조선족 사기 피해자들의 문
제도 해결할 수 있다. 즉 피해액을 감안하여 일정한 가산점을 주면 이들부터 입
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시험제도를 도입하면 동남아에 한국어 붐이 불게
되어 어렵지 않게 한국어를 세계어로 만들 수 있다.
마지막 남는 문제는 불법 체류 조선족의 처우문제다. 이제는 ‘무자비한’ 추방
을 ‘인정(人情)’이 있는 추방으로 전환해야 한다. 4년 이상 체류한 동포들은 특
별한 사정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2∼3개월 내로 즉시 출국토록 한다. 그리
고 이 기간에 출국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벌금과 재입국을 금하는 무거운
조처를 취해야 한다.
체류기간 넉넉하게 4년으로
그러나 갓 입국한 사람은 적어도 4년 후에 출국할 수 있도록 추방일자를 넉넉하
게 지정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입국시 진 빚도 갚고 돈도 저축해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불법 체류자들도 비로소 인간다운 대접을 받게 되고 우리 국민도
편안한 마음으로 의료혜택, 교육서비스 등 그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할
수 있게 된다.
4월 30일이면 자진출국기간이 끝난다. 그러면 법무부와 경찰은 특별한 일이 없
는 한 다시 길거리에서 ‘재수없이 걸린’ 불법 체류자를 무자비하게 추방하는 일
을 재개할 것이다.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근원적인 대책
을 강구하지 않는 한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우리 나라는 조선족과 외국인노동
자문제에 관한 한 야만의 나라다. 언제까지 야만의 나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우리 민족서로돕기운동 소식지 2000년 4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