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글 파괴에 앞장서는 외래어 브랜드명

제 목
(칼럼) 한글 파괴에 앞장서는 외래어 브랜드명
작성일
2000-05-12
작성자

국제연합 기구인 유네스코에서는 문맹(까막눈) 퇴치에 크게 이바지
한 사람들에게 ‘세종대왕 상’을 주어, 한글의 가치와 공적을 국제적으로 인정하고 있
습니다. 지금 비로소 한글이 한자의 굴레에서 벗어나 역사 흐름의 주체가 되고 있습
니다. 그런데 국제 교류가 늘면서 서양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우리 언어 생활
을 아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한글과 서양 외래어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 한효석

한글 파괴에 앞장서는 외래어 브랜드명

우리말 브랜드 이름을 빙자한 한글 파괴(?) 상표가 지속적으로 선보여 한글 오용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브랜드가 외국어인지 국어인지 모를 국적 불명의 것을 비
롯, 맞춤법을 무시하고 소리나는 대로 적은 듯한 브랜드가 기승해 혼란을 더한다.

특히 발음 위주로 만들어 낸 상표는 [우리 것을 찾자]는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가 왜
곡된 형태로 반영된 것이어서 시급한 방향 설정이 요구된다. 상표에 외국어를 쓰는 관
행과 발음 위주 상표를 쓰는 관행은 1960년대부터 조금씩 나타난 현상이다. 50년대까
지만 해도 의식주 해결이 시급한 가운데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 우리말 상표가 많
았다.

생명과 장수를 기원하는 이름으로 대표적인 것은 {불로초}, {산삼}, {천도}. 한국적
정취를 나타내는 것으로는 {대동강}, {송학}, {춘향}이 있었다. 또한 현존하는 상표
중에서 가장 오래된 상표인 동화약품의 {부채표}가 이 당시 정식 등록을 한 것이다.

하지만 60년대 들어 외래 문화가 물밀듯이 침투되면서 상표 역시 영어를 남용하는 추
세를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kiss Me 슬립}. 직접적인 영어 사용이란 것 외에
도 성적 느낌을 준다 해서 당시로선 꽤 파격적인 상표로 등장했다.

이때의 무분별한 상표명은 70년대 후반 우리말 순화 운동이 전개된 것과 함께 우리
고유 상품의 개발이 적극 권장되면서 차츰 기세가 누그러진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이
상스런 조어가 또다른 유행기류를 형성하게 된다. 특히 두드러졌던 분야는 술이다.

해태에서 나온 국산위스키 {드슈}. 프랑스어처럼 보이는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쓰는
[드시오], [드시우]를 줄인 말이다. 국산 보드카 {하야비치}도 하얗게 비친다는 한글
을 변형해 만든 것이다.

외국어 브랜드의 지속적인 인기는 우리 것을 찾자는 분위기와 아시안게임, 서울 올림
픽 등으로 한국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성향에 따라 순수 한글 브랜드가 개발되면서 다
소 주춤해졌다. 주로 식품업체들이 개발한 한글 브랜드는 {보리보리}, {감치미}, {살
로우만}, {방글방글} 등. 생활용품에도 {향초롱}, {야채마을}, {빨래 박사}, {한스
푼} 등이 선보이고 있다.

한글브랜드 개발이 속속 이루어지면서 문제점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발음 위주의 한
글 표현이다. 이 경향은 특히 제과업계가 주도해 왔다. {누네띠네}, {머거본}, {고스
락}, {묵지바} 등. {나그랑}, {탐스핀}, {참존}, {피어니} 등 화장품업계 역시 즐겨
쓰는 표현 방법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이름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꾸준히 유행하고 있으나, 먼
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람들이 이런 외래식 상표를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젊은
세대들이 한글이름 캠페인을 벌이면서도 외래어 상표를 애용하는 세태는 분명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잡지에서 우리말 제목이 사라지고 있다

‘Art Rock’, ‘City Life’, ‘Hobbist’, ‘Mac World’, ‘Fashion Today’, ‘Golf
Herald’, ‘Queen’, ‘Dog World’… 한동안 외래어로 제호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더니
이젠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그 표기마저 알파벳을 사용한 국적불명의 잡지들이 쏟아
져 나오고 있다. ‘News week’, ‘Newton’, ‘GEO’, ‘Marie Claire’등 외국 잡지를 번역
해 내는 한국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순수하게 국내에서 제작되는 잡지들도 제호를 영
문자로 쓰는 것이 일반화되는 추세다. 가장 심한 것이 레저 전문지들. 골프의 경
우 ‘Golf Digest’, ‘Golf Journal’, ‘Modern Golf’, ‘Golf Master’등 서점에 나와 있
는 6종이 모두 영어 일색이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이 레저 전문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The Best’는 상품 정보
지이고 ‘Military World’는 군사전문지, ‘CO.S.MA’는 디자인 전문지다. ‘Queen’이
나 ‘Feel’같은 여성지에서부터 어린이용인 ‘Kiddy Cat’까지 영어가 쓰이지 않는 곳은
없다.

알파벳 제호가 이렇듯 당당하게 자리를 굳히고 있으니 한글로 표기한 외래어 제호는
더 말할 것도 없다. ‘PC 어드밴스’ ‘PC월드’ ‘컴퓨터 링크’ ‘게임 채널’ ‘컴퓨터 타임
즈’ ‘헬로우 PC’ 등 컴퓨터 분야는 우리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고, ‘라벨르’ ‘차밍우
먼’ ‘마이 웨딩’ ‘리빙 센스’ 등 여성지도 외래어에 점령당한지 오래다. ‘인사이더 월
드’ ‘뉴스 메이커’ ‘뉴스 피플’ ‘커런시 코리아’ ‘세미나 저널’ ‘아시아 타임스’등 인
물·시사·경제 분야까지도 잡지 제호에서 국적이 사라져 가고 있다.
(김경훈, [한국인 트렌드], 실록출판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