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머님과 아파트 – 성해숙

제 목
(수필) 어머님과 아파트 – 성해숙
작성일
2000-05-12
작성자

성해숙(주부, 경기도 부천시)

얼마 전 시어머님이 일 년만에 우리 아파트에 오셨다. 평소 어머님을 모시고 싶
어하는 자식들 마음을 헤아려 겨울 동안만이라도 계시려고 시골에서 올라오신 것
이다. 그런데 어머님은 오시자마자 감기가 심해 자리에 누우셨다. 일 주일이 지
나자 기력은 되찾으셨는데 아파트에 계신 것을 답답해 하셨다. 아파트 구조가 사
방이 막힌 벽으로 되어있고 나갈 때는 승강기를 타야만 하는 것도 적응이 안되시
는 모양이었다. 어머님은 식사 후에도 소파에 기대거나 누워만 계셨다. 마침내
는 손녀에게 음력 날짜를 물어 보시는 모양이 날짜가 지나 하루 빨리 시골집에
가고 싶어하는 눈치셨다.

어머님이 그렇게 가시고 싶어하는 시골집은 울창한 나무들이 들어 차있는 산 아
래에 자리잡고 있다. 집은 세월이 지나면서 낡고 허름해 졌지만 오히려 오래된
집 모양이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져 자연스럽다. 푸른빛이 시작되는 봄부터 가을
까지 마당에서는 여기저기 꽃과 풀이 뒤섞여 피면서 온종일 향기를 풍긴다. 햇볕
이 내리쬐는 한낮부터 오후까지 뒷밭에서는 갖가지 채소와 한데 뭉친 흙 냄새가
자연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한다.

우리 가족은 해마다 여름이면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저녁 때가 되면
마당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준비한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밭에서 막 뜯어
온 상추, 쑥갓을 씻어 놓고 큰 항아리에서 퍼온 된장 고추장을 섞어 고기를 싸먹
는 맛은 산해진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리가 시골에 갔을 때는 장마철과 겹쳐 비가 내린 날이 많았다. 비가 많이 내
리면 뒷산에서 빗물이 쏟아져 내려오는데 빗물은 뜰뒤 돌담 아래로 모이고 그 물
은 돌담길을 따라 다시 집과 담 사이로 흘러 나간다. 작은방 창문 너머 언덕에서
도 빗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데 우리는 방안에서 그 장관을 보며 더위를 식혔
다.

그리고 비가 개고 난 후 저녁 무렵이면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텃밭으로 나갔
다. 물기 있는 텃밭에서는 지렁이들이 여러 겹으로 엉켜 꿈틀거리고 벌레들도 물
이 고인 밭고랑으로 모여들었다. 밭 가장자리 풀덤불 속에 있던 두꺼비 한 마리
가 인기척에 놀라 산으로 어슬렁거리며 올라갔다.

그 광경을 지켜 본 아이들은 징그럽다고 소리 쳤지만 난 오랜만에 보는 생명체
들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만큼 생명체가 많은 곳은 오염되지 않은 곳이었기 때
문이다.

아버님 계실 때에는 밭에 가끔씩 농약을 뿌렸는데 어머님은 일체 약을 뿌리지
않으셨다. 그대신 나무를 태우고 난 재나, 멸치 가루, 음식 찌꺼기를 모아 땅을
파고 묻었다. 잡초는 손으로 하나 하나 뽑아 내시면서 배추벌레, 진드기 같은 해
충은 손으로 잡으셨다. 그 덕에 텃밭에서는 무공해 채소가 잘 자라게 되고 우리
는 그 채소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님은 시집 온 후 평생을 시골 집에서 흙을 만지고 밟으면서 사셨다. 그런
어머님을 우리가 아파트로 모셔 왔으니, 어머님이 생병이 나도 나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