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른 마음, 아이 마음 – 정문성
정문성(주부, 부천시 원미구 중동)
지난 3월 작은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까지는 버스 노선이 없어서 20
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통학하게 되었다. 엄마의 마음은 늘 그렇듯 초등
학교에 입학했을 때처럼 큰 길을 두 번 건너서 통학하는 아이가 늘 안쓰러웠다.
집 가까이 중학교가 있었던 때와 달리 학교에서 조금만 늦게 돌아와도 조바심을
내게 됐고, 왜 진작 운전 면허를 따지 않았나를 후회하곤 했다.
아주 조금은 학교 생활에 익숙해진 3월 말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훨
씬 지났는데도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 안절부절못하
다가 학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학교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건너
편 길 쪽에서 힘이 쭉 빠진 딸아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교복
에 피가 묻어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철렁하였다.
아침 등교 길에 꽤 덩치가 큰 개를 치고 달아나는 뺑소니차를 목격하고 너무나
놀란 아이는 가방을 친구에게 맡긴 채 피 흘리는 개를 안고 파출소로 갔던 것이
다. 이른 아침부터 잡무가 많은 학교 앞 파출소에서 교통사고 당한 개 따위에 관
심을 갖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저씨들은 짜증스런 표
정으로 개를 받아 대강 뉘여 놓았다고 한다.
하루종일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에 하교 시간만 기다린 아이가 다시 파출소에
가보니 개는 아침보다 더 심하게 신음하며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다. 아이가 울면
서 개를 근처 가축병원으로 데리고 가 사정 이야기를 하니 의사는 엉덩이 뼈가
부서져 수술을 해야 하며, 20만원의 수술비가 든다고 응급처치조차 해 주지 않았
다는 것이다. 다시 강아지를 파출소에 데리고 가니 순경 아저씨들은 아이를 딱하
게 여겼는지 조금은 친절하게 동물 보호소에 보내 주겠다고 해서 돌아왔다고 한
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아이가 너무 가여워 엄마한테 전
화라도 하지 그랬냐는 말밖엔 할 수가 없었다. 수술비가 너무 비싸 엄마에게 전
화 할 수도 없었다는 아이를 보며 20만 원이란 돈 때문에 살아있는 목숨을 방치
해야 하는 건지 갈등이 생겼다. 의사 선생님께 수술비를 반만 받고 치료해달라
고 부탁해 볼까. 반이라 해도 10만원인데?
개가 가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를 보고도 냉정하게 응급처치조차 해 주지
않은 의사, 뺑소니 운전사, 순경 아저씨, 모두 그러시면 안 된다고 딸애가 보는
앞에서 큰소리로 야단이라도 쳐주면 조금 위로가 될까.
“혹시 개가 잘못 되더라도 네가 하루 종일 애쓰고 끝까지 돌봐준 것을 다 알
거야. 순경 아저씨가 동물 보호소에 보내주면 거기서 치료해 주겠지.”
결국 나도 선뜻 수술을 시키자는 말을 못한 채 마음으로만 개가 빨리 치유되기
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