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 이름 ‘연진’ – 이연진

제 목
(수필) 내 이름 ‘연진’ – 이연진
작성일
2000-06-5
작성자

사람들은 매순간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 해를 거듭 할수록 주관
이 생기게 되면 선택에 대한 기준도 분명해지고 나름대로 의미를 두게 된다. 그
러나 평생을 사용해야 하는 이름은 대부분 부모님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래서 부
모님들은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가 여러 곳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며 작명소에 가
서 이름을 지어오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우리 부모님도 나의 이름
을 짓기 위해서 적지 않은 고민을 하셨다.

우리 어머니는 시집을 와서 여자아이만 셋을 낳았다. 그 때문에 아들을 바라는
시부모님께 언제나 죄인처럼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나를 낳기 전부터 좋다는
한약을 많이 먹어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넷째 딸인 나를
돌림자에서 제외시키는 방법을 택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종진’이 대신에 ‘연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내 이
름에는 행운이 들어오는 길이 있었나 보다. 내가 태어나면서 아버지가 하는 일
이 잘 되었고 어머니는 사내아이를 두 명이나 낳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부르기 쉽고 예쁜 이름을 가져서 좋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언니들은 내 이름을 늘 부러워하였으며 ‘이름만 예쁜 동생’이라고 하면
서 밉지 않은 말투로 놀리기도 했다. 언니들은 이름에 대한 불평을 늘어 놓을 때
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갈 때면 나는 조금 떨어져 앉아 예쁜 이
름을 갖게 해 준 남동생 얼굴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자라면서
한동안은 이름 때문에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혹시나 데려다 키운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 때마다 부모님의 표정을 살피기도 하면서 신데렐라 환상을 꿈꾸어 보기도 하
였는데 이러한 생각은 어렸을 때 잠시 느껴보는 감상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부
르기 쉽고 듣기 좋은 이름으로 만족하였다. 하루에도 수 없이 듣는 이름이었지
만 무심코 흘려보내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친구에게서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누군가 이름을 불
러주게 되면 그 뜻이 지구둘레를 몇 바퀴 돌다가 주인을 찾아 에워싸게 된다는 것이었
다. 나는 생전 처음 보이지않는 그 어떤 힘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숨돌릴 겨를도 없이 ‘자연’과 ‘별’이라는 뜻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 그 후로는 이름의 뜻을 생각하며 혼자서 자주 불러 보곤 하였는데 그러
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철이 들면서 이름에 대한 애착이 생기게 되었다. 나
는 <연진>이라는 이름을 어떠한 일이 있어도 빛이 바래지 않는 자연 속의 별처
럼 살아가라는 부모님의 말씀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대자연 속에 안기는 기분으로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
다. 자연처럼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푸른 바다, 푸른 산, 푸른 하늘과 같
은 마음으로 살아 갈수 있다면…. 그러나 단지 마음이었을 뿐 멀리서 바라보는
날들이 더욱 많이 있었다.

나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
연 속에 있는 별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생활 속에서 조금 어렵고 참아내
기 힘든 일이 있어도 나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그 안에 잠시 묻어두면 참아내기
가 수월해 진다. 부족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연진>으로 남을 수 있게 도
와 준 부모님과 남동생 앞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내이름과 얼굴이 어울리지 않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닦아내야 할 마음이 남
아 있는 것 같다. 나의 이름과 모습이 잘 어울린다고 말을 해주는 사람들은 거
의 없다. 그러나 학부형으로 만나게 된 유석이 엄마는 내 모습에 상관없이 언제
나 불러 주고 싶은 이름이라 하면서 다정항 목소리로 ‘연진아 -’하고 여운을 남
기며 부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