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버지, 편히 쉬세요…..-김혜주

제 목
(수필) 아버지, 편히 쉬세요…..-김혜주
작성일
2000-06-6
작성자

김혜주(주부, 부천시 상1동 반달마을 신라아파트)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우리 집에는 큰 울음소리가 없었다. 천주교식 장
례라 조용하고 차분했고, 교우들의 연도 소리만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신자
가 아닌 남편 친구는 곡소리가 없으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하며, 우리가 너무 슬
퍼하지 않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것 같은 눈치였다. 나이 드신 친척이나 부모님
의 친구 분들은 본인을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나 이제 가실 때도 됐다며 엄마
를 위로하셨다.

아버지가 이십 년을 앓으시는 동안 고비도 많았다. 곧 돌아가실 것처럼 구급차
로 실려 가신 것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고, 큰 수술도 몇 번 하셨다. 너무 쇠
약해져서 잘 걷지 못하신 것도 몇 년이 되었고, 산소 호흡기를 침대 옆에 설치
한 것도 돌아가시기 반 년 전의 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도 우리는 고비를 넘겼다고 안심하고 있었다. 워낙 생명
력이 강하셔서 또 웬만해지실 거라고 생각하면서 잠든 아버지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남편과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다가 동생의 놀란 전화
를 받고 나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정말 돌아가셨구나.

성당 연령회와 교우들의 도움으로 장례식이 무사히 끝나고, 처음의 놀라움과 가
슴아픔이 잦아들자 우리는 모두 평온해졌다. 오래 전부터 예상했던 일이어서 충
격이 덜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거의 아버지를 잊고 살면서 일 년 정도가 흐르자, 언
제부터인가 아버지의 죽음이 점점 더 슬퍼지기 시작했다. 이십 년 동안 그분이
겪으셨을 투병의 고통, 늘 죽음을 마주하고 계시는 두려움, 건강한 다른 가족에
대한 부러움이 얼마나 크셨을까 새록새록 가슴이 아파 왔다.

그분의 화나 짜증에 가족들도 힘들었지만 따져보자면 가장 힘든 분은 아버지였
던 것이다. 아버지의 투병 의지는 철저했으나, 한편으로 그분은 죽음을 두려워하
셨다. 사후 세계에 대해서 늘 관심을 갖고 어느 신문에 연재된 사후의 세계 기사
를 스크랩해놓고 자주 들여다보셨다. 가끔씩은 나에게도 정말 영혼이 있다고 생
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가끔 속이 상하여 술이 과하실 때면 아버지는 온 집안을 휘저어 놓으셨다. 이런
저런 약들을 꺼내놓고서 죽겠다고 소동을 부리셨다. 우리가 울며불며 말리고 그
약들을 빼앗아 버리면,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며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희망
이 없다’고 넋두리를 하셨다. 여러 번 그런 소동이 되풀이되자 나중에는 우리
도 조금씩 둔감해졌고, 마음속으로는 우리가 말리지 않아도 아버지는 그 약을 드
시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도 나이 들면서, 아버지의 그 소동이 결코 시위
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정말 죽고 싶으셨을 것이다. 용기만 있다면
그 힘든 생을 그만 놓고 싶으셨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20여 년의 간병으로 이
미 둔감해 졌지만, 당신에게는 늘 절박한 고통이었고, 헤어날 길 없는 두려움이
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상태가 더욱 나빠지면서 당신의 고통과 두려움은 더
욱 커갔을 것이다.

더 세심하게 돌봐 드리고 아버지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살펴 드려야 했다고 아
픈 눈물을 삼키면서도, 한 가닥 위안이라면 이제 아버지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오랜 병환으로 가족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지도 못했고, 세상
을 위해 크게 좋은 일을 하지도 못했지만, 그분이 겪어야 했던 그 고통만으로도
하느님의 위로를 받기에 충분하리라 믿는다.

아버지, 이제는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