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슴 아픈 수학 여행 -신옥

제 목
(수필) 가슴 아픈 수학 여행 -신옥
작성일
2000-10-15
작성자

신 옥 (주부, 부천시 원미구 상1동 한아름)

수학 여행 하면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기 전에 먼저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리고
3년간 담임이셨던 선생님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지금 아이들이야 유치원 때부터
캠프다, 현장 학습이다 하여 집 떠나 여행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20여 년 전만
해도 그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학 여행은 고등학교에 가서야 처음으
로 갈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도 고등학교 2학년 때 당일 다녀오는 소풍이 아닌, 수학 여행을 설악산으
로 가게 되었다. 친구들의 설렘처럼 나 역시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그러
나 수학여행비 통지서를 보고 ‘나도 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무너지기 시작했
다. 기대가 큰 만큼 수학여행비는 내게 너무 비쌌다.

내가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보내 주실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많은 식구에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려 나가시는 엄마 마음을 생각하니 도저히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7남매였던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대학교까지 모두
가 학생이었다. 더군다나 오빠들이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어 참 힘든 때였
다. 아버지 혼자 수입으로 엄마가 너무 힘들게 생활을 꾸려 나간다는 것을 난
잘 알고 있었다.

매번 장학금을 받아 다른 아이들 보다 내 납부금은 반 이상으로 줄어 있었다.
그런데도 형제들 납부금을 다 내고 난 뒤에야 엄마에게 말해 내 납부금을 겨우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나도 반 친구들이 거의가 다 가는 수학 여행을
꼭 가고 싶었다. 친구들이 쑥쑥 돈 내는 것을 보고 나 혼자만 못 가게 될 것 같
아 불안했다. 오늘은 엄마에게 말해볼까 하다가도 엄마 얼굴을 보면 차마 그 말
을 꺼낼 수가 없었다. 통지서를 보여드리지 못하고 가방 안에 며칠을 그대로 넣
고 다녔다.

만지작거리던 통지서의 귀퉁이가 닳아질 때쯤 담임 선생님이 날 불렀다. 나는
몸이 아파서 수학 여행을 못 간다고 했다. 물론 집안 형편을 잘 알고 있던 선생
님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반장이 안 가면 되겠느냐?’며 수학여행비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정말 아파서 못 간다는, 뻔한 거짓말을 했다. 선생님
은 웃으시며 알았으니 수학 여행 갈 준비나 하라며 내 어깨를 툭 치셨다.

난 끝내 엄마께 3박4일 수학여행 통지서를 드리지 못했다. 그 대신 수학 여행
못간 아이들을 위해 당일 코스 부여로 가는 통지서를 엄마께 내밀었다. 뒤늦게
내 얘길 들으신 엄마는 선생님 말씀대로 수학여행을 갔다 오라고 했다. 그러면
돈은 나중에 선생님께 드리겠다며……. 그러나 사춘기 소녀의 자존심은 그것
을 용납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

수학 여행 당일, 선생님이 한 편으로 꾸중하고 한편으로 달래기도 했지만 난 기
어이 설악산행이 아닌 부여행 버스에 올랐다. 달래다 지친 선생님은 내 등을 세
게 때리고 설악산행 버스로 가셨다. 화가 나신 선생님의 옆 모습을 보인 채 설악
산행 버스가 먼저 떠났다.

내 어려움을 알고 수학여행비를 내주신 선생님의 고마움을 거절한 것이 죄송하
면서도 왠지 떳떳하게 생각되었다. 오히려 부여에 도착해 천 년 전의 백제 향기
를 맡으며 어두운 마음은 다 흩어지고 말았다. 집 떠나 차 타고 멀리 온 첫 여행
이었기에 마냥 즐겁기만 했다. 친구들과 웃고 재잘대다 보니 멀리 설악산까지
간 친구들이 부럽기는커녕 생각도 나지 않았다.

넓은 바닷가, 처음 본 법주사의 커다란 미륵불, 삼천 궁녀가 빠져 죽었다는 낙
화암, 산 속 깊은 곳의 고란사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기쁨이었다. 하루
종일 이곳 저곳 구경하느라 내 눈과 마음은 커질 대로 커졌다. 새로운 곳을 찾
아 떠나 온 즐거움은 하루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하루만에 다녀오는 여행이었지만 내게는 그것이 첫 수학 여행이었다. 설
렘으로 가득 찬 수학 여행이었고 또한 많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없었던, 사실
은 가슴 아픈 수학 여행이기도 했다. 싫다고 무조건 고집을 부렸던 내 모습이 지
금도 생각난다. 속상해 하시던 선생님의 그 눈빛이 세월이 흐를수록 너무도 선명
하게 남아있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그때 부여행 버스를 탄 것이 세월의 무게만
큼 짙은 후회로 남는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여유가 사춘기 소녀였던 내겐 없
었던 것이다. 그러나 날 배려해주신 선생님께 지금이라도 정말 고맙다는 말씀 드
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