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박하사탕과 붕어빵 – 이경옥

제 목
(수필) 박하사탕과 붕어빵 – 이경옥
작성일
2000-11-7
작성자

이경옥(주부, 부천시 원미구 상1동 반달마을)

몇 해전부터 외삼촌 건의로 서울 어느 복지회관 사회봉사센터의 문을 두드렸
다. 그리고 나는 독거 노인 할머니 목욕팀에 배치되었다. 방화동 영구 임대 아파
트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를 소개받고 우리 팀 2인조는 매주 화요일에 목욕을 시
켜드렸다. 그리고 2년 동안 꾸준히 즐겁게 잘했는데, 작년 5월에 내가 디스크란
병명을 짊어진 뒤부터 1년 이상 그 일을 그만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같은 조였던 아주머니가 얼마 전 내
게 편지를 보내셨다. 몸이 웬만하면 같이 봉사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는
몸도 어느 정도 좋아져서 곧바로 아주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아주머니와 만나기
로 약속을 했다. 며칠 후 아주머니를 만나 할머니 목욕 시켜드리는 일을 다시 하
겠다고 말하였더니, 아주머니는 해바라기꽃 같이 활짝 웃으셨다.

드디어 약속한날, 부천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공항에서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교통이 너무 불편하였다. 그
래도 내가 다시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때문에 불편한 교통쯤은 털어버릴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도 오랜만에 나를 보시고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같이
간 아주머니가 분위기를 진정하려고 “경옥씨! 박하사탕 할머니 드려야지요.” 하
는 순간 나는 아찔했다. “빈손으로 왔구나! ” 할머니를 찾아 뵐 때마다 박하사
탕 한 봉지를 꼭 사 가지고 갔는데 이번에는 빈손으로 왔다. 왜 빈손으로 왔는
지 이해가 안되었다.

우리 나라사람들은 어느 집이든 방문하면 무언가 사 가지고 가는 것이 인정이
다. 그런데 오랜만에 할머니를 뵙는데 빈손이라니…. 2년 넘게 해오던 일인데
도, 몸에 버릇으로 붙지 않아서 그 새 잊어먹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현관문을 열고 슈퍼로 달려 갔다. 그러다가 슈퍼까지 가려
면 조금 멀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가까운데 붕어빵 리어카가 보였다. 슈퍼까지
가면 귀찮으니까 붕어빵을 사서 드려야지 하는 생각에 붕어빵을 사서 할머니댁
에 들어갔다.

내가 “할머니! 따뜻한 붕어빵 드세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나는 박하사탕 먹
고 싶어” 하신다. 어떡하면 좋을까? 사회 봉사를 하겠다면서도 그 사이 벌써 나
는 내 몸을 사리고 있었다. “좁은 소견을 가지고 무슨…”하며 마음속으로 내 자
신을 꾸짖었다. 양심을 팔아먹은 것같아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마음에서 우러
나야 봉사하는 보람을 느끼는 것인데, 나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
여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죄의식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