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님’이 아니라 ‘해님’입니다.
‘햇님’이 아니라 ‘해님’입니다
눈사람이랑 놀아야지/햇님이 오기 전에/울엄마가 오기 전에/어서어서 놀아야
지.//햇님이 오면은/눈사람은 물이 되어/숙제하러 집으로 가야 하고/울엄마가 오
면은/나는 피아노 치러 학원으로 가야 해//햇님은 미워미워//햇님이 오기 전에/
눈사람이랑 놀아야지
이제는 고인(故人)이 되어버린 「국토 서시」의 시인 조태일 씨가 세상을 등지
기 바로 전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간한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라는 시집
에 들어있는 「눈사람이랑」이라는 시입니다.
요즘 아이들 마음을 담아 쓴 동시인데, 이 시에는 잘못 쓰인 낱말이 하나 있습
니다. 별 생각 않고 보면 잘 보이지 않을 거예요. ‘햇님’이 잘못 쓰인 말입니
다. ‘해님’이라고 써야 맞는데 보통 ‘햇님’이라고 너무 많이들 쓰고 있어 ‘햇
님’이 잘못 쓰인 말이라고 바로 찾아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님’은 명사 아래에 붙여 높임의 뜻을 나타낼 때 쓰는 접
미사입니다. ‘선생님, 부모님, 손님’ 따위에 보이는 ‘-님’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 ‘달님, 해님, 토끼님’ 같은 낱말에서처럼 어떤 대상을 인격화하여 높이거나
다정스럽게 일컫는 뜻을 담아 나타낼 때도 이 접미사가 쓰입니다.
접미사 ‘-님’ 앞에 붙는 명사의 끝음절에 받침이 없을 때 사이시옷을 넣어 쓰
면 안 됩니다. 사이시옷은 두 낱말이 결합하여 합성어를 이룰 때 쓸 수 있습니
다. ‘시냇물, 나뭇잎’처럼요. 명사와 접미사가 결합할 때는 사이시옷이 필요하
지 않습니다. ‘줏님’이라 하지 않고 ‘주님’이라 하듯 ‘해님’도 ‘햇님’이라고 해
선 안 됩니다. 만약 ‘햇님’이라 해야 한다면, ‘주님’도 ‘줏님’이라 해야 하
고, ‘토끼님’은 ‘토낏님’, ‘노루님’은 ‘노룻님’이라 해야 합니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얼마 전까지 우리 아이들 혼을 빼놓고 보던 <텔레토비>라
는 유아용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끝날 때면, 둥근 해 속에 귀여
운 아기가 예쁘게 소리내어 웃는 화면이 나오고 이런 인사말이 따라나옵니
다. “햇님도 집에 갈 시간이에요. 꼬꼬마 텔레토비 친구들, 안녕!” 이 인사말이
화면에 써 있지 않고 말로만 나오는데, ‘해님’인지 ‘햇님’인지 어떻게 아냐고
요? ‘해님’은 ‘[해님]‘으로, ‘햇님’은 ‘[핸님]‘으로 읽을 수밖에 없거든요. 원
래 “해님도 집에 갈 시간이에요.”라고 써 있던 것을 읽는 사람이 ‘[핸님]‘으로
읽었을 수도 있겠죠. ‘[핸님]‘이라고 하는 사람은 ‘[해님]‘이라고 고쳐 말하도
록 해야 합니다.
<햇님 토이>라는 아기들 장난감 만드는 회사도 있더군요. 우리 아이들이 어렸
을 때부터 이런 상표가 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보면 자라서도 자연스럽게 ‘햇
님’이 바른 표기라고 생각하고 쓰게 되겠지요.
‘햇님’이 아니라 ‘해님’입니다. ‘[핸님]‘이 아니라 ‘[해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