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달 우리말편지를 못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무척 바쁠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모레까지는 나주 농업박람회 가야하고,
글피와 그글피는 특허청에 가서 교육받아야 하고,
주말에는 대전에서 친구들 만나 놀기로 했고…
이러다보변 아마 ‘나달’은 우리말편지를 못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라고요?
며칠 동안 우리말 편지를 못 보낸다고요?
나달? 나달이라는 낱말을 들어보셨나요?
‘사날’이나 ‘사나흘’을 들어봤어도 ‘나달’을 처음 들어보신다고요?
날짜를 세는 우리말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열하루, 열
이틀…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이렇게 정확하게 하루, 이틀을 말하지 않고
3-4일, 7-8일처럼 두 날짜를 어림잡아 이야기해야 할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말을 좀 알아볼게요.
1-2일은 ‘일이일’,
2-3일은 ‘이삼일’,
3-4일은 ‘삼사일’,
4-5일은 ‘사오일’,
5-6일은 ‘오륙일’,
6-7일은 ‘육칠일’,
7-8일은 ‘칠팔일’,
8-9일은 ‘팔구일’,
9-10일은 ‘구십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이일’과 ‘칠팔일’은 사전에 올림말로 오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사전을 만드시는 분들이 잠깐 조셨나 봅니다.
이상하게 그 두 낱말만 표준어 대접을 못 받고 있습니다.
앞에서 보인 두 날짜를 어림잡아 이야기하는 낱말 중 몇 가지는 다르게 부르기
도 합니다.
곧, ‘삼사일’은 ‘사날’이나 ‘사나흘’이라고도 하고,
‘사오일’은 ‘나달’이라고 하며,
‘오륙일’은 ‘대엿새’,
‘육칠일’은 ‘예니레’라고 합니다.
멋있죠?
우리말이 이렇게 멋있습니다.
앞에서 제가 ‘나달’은 우리말편지를 못 보낼지도 모르겠다고 했으므로,
이번 주에는 사오일, 나흘이나 닷새가량 우리말편지를 못 보낼지도 모르겠습니
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편지입니다.
[낭만에 대하여...]
어제도 퇴근 후 곡차를 한 잔 했습니다.
곡차 기운이 거나한 김에 노래방에까지 들렀죠.
누군가 오랜만에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부르더군요.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
참 멋진 노래죠.
말 그대로 낭만에 젖어 노래를 감상했습니다.
노래는 좋아도 그 ‘낭만’이라는 말은 참 창피한 말입니다.
‘낭만’의 사전적 의미는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
또는 그런 심리 상태로 인한 감미로운 분위기”입니다.
그 낭만을 한자로는
물결/파도 랑(浪) 자에 넘쳐흐를 만(漫) 자를 씁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죠?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낭만’은
영어(프랑스언가?) romance를 일본 사람들이 비슷한 발음의 한자를 빌려다 적
은 겁니다.
일본 사람들은 romance를 ‘浪漫’이라고 쓰고,
‘ろうまん[로우망]’이라고 읽습니다.
자기들 발음에 맞는 비슷한 발음의 한자를 빌려다 적고,
읽는 것도 원 발음과 비슷하게 ‘로우망’이라고 읽는 거죠.
근데 우리는 그것을
한자 그대로 ‘낭만’이라고 읽고 있는 겁니다.
이 얼마나 낯부끄러운 일입니까.
차라리 ‘로맨스’라고 읽고 읽는 게 낫지,
낭만이 뭡니까, 낭만이…
더 가슴 아픈 것은 우리 주변에 이런 게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