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라이트가 아니라 하이라이트
안녕하세요.
연말이라 이런저런 행사가 많네요.
그 많은 행사 가운데 가장 뜻깊은 것은 역시 보신각종을 치는 것이겠죠.
어떤 행사에서 가장 두드러지거나 흥미있는 장면을 ‘하이라이트’라고 하는데요.
이는 아시는 것처럼, highlight입니다.
그리고 그 발음은 []입니다. [하일라이트]죠.
그러나 이는 ‘하이라이트’라고 해야 바릅니다.
‘하일라이트’가 아닙니다.
그 까닭은 외래어 표기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에는 따로 설 수 있는 말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어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말이 단독으로 쓰일 때의 표기대로 적는다고 규정되어 있
습니다.
곧, 외래어 단어 두 개가 모여 하나의 단어가 되었을 때는
각각의 단어 발음을 그대로 쓰는 것이죠.
이에 따라,
high의 발음이 [하이]이고, light의 발음이 [라이트]라서,
highlight의 발음도 [하이라이트]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하이라이트’나 ‘하일라이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 있는 ‘하이라이트’의 뜻풀이입니다.
그 사전에는 하이라이트의 뜻을 풀어놓고,
그 바로 뒤에 ‘강조’, ‘주요 부분’으로 다듬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정리하면,
‘하일라이트’가 아니라 ‘하이라이트’가 맞지만,
‘강조’나 ‘주요 부분’으로 쓰시는 게 더 좋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으뜸’이겠죠.
고맙습니다.
우리말123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 편지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 이 자리를 빌려...]
안개가 짙게 끼었네요. 출근 잘 하셨죠?
주말 잘 보내셨죠?
저는 작년 마지막 날에는 가족과 함께 찜질방에 갔고,
올 첫날은 집에서 애들과 함께 뒹굴었습니다.
찜질방에서 박범신 님의 ‘남자들, 쓸쓸하다’는 산문집을 봤는데요.
대한민국 모든 여자들에게 권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기회가 되면 꼭 보세요.
제 아내도 지금 보고 있습니다.
연초라 좋은 내용으로 시작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작년 반성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말 시상식에서 꼭 지적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상을 받는 사람 거의 다가,
‘이 자리를 빌어 OOO에게 감사하고…’라는 말을 합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분들도,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올 한 해 많이 도와주시고…이 자리를 빌어 시청자/청취자님께 감사하
고…’
아마,
올 초 행사장에서도,
그런 말이 많이 나올 겁니다.
그러나 ‘이 자리를 빌어…’는 틀린 말입니다.
최근에 맞춤법이 바뀐 게 18년 전인 1988년입니다.
그전에는 ‘이 자리를 빌어 OOO에게 감사하고…’라는 말이 맞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빌다’에
1. 남의 물건을 도로 주기로 하고 가져다가 쓰다.
2. 남의 도움을 보수 없이 그냥 힘입다.
라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리다’는,
‘도로 찾아오기로 하고 남에게 물건을 얼마 동안 내어 주다’로
‘빌다’와 ‘빌리다’를 갈랐습니다.
그러나 1988년 맞춤법을 바꾸면서,
일상에서 잘 가르지 않고 가르기도 힘든 이 두 낱말을
‘빌리다’로 통일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빌다’에는,
1.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하여 달라고 신이나 사람, 사물 따위에 간청하다.
2. 잘못을 용서하여 달라고 호소하다
3.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다.
는 뜻밖에 없습니다.
물건이나 생각을 주고받는다는 뜻은 없습니다.
또, 어디에도
‘이 자리를 빌어 OOO에게 감사하고…’에 쓸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빌리다’는
1. 남의 물건이나 돈 따위를 나중에 도로 돌려주거나 대가를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쓰다.
2. 남의 도움을 받거나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믿고 기대다.
3.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하여 따르다.
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 3에 나온 뜻을 따르는 보기를 보면,
성인의 말씀을 빌려 설교하다/그는 수필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기의 속 이야기
를 풀어 갔다./신문에서는 이 사건을 고위 관리들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이 자
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어부의 말을 빌리면 토종 어종은 거의 씨
가 말랐다고 한다./강쇠의 표현을 빌리자면 씨가 안 먹는 말이라는 것이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좀 길었는데요.
정리하면,
인사말을 할 때 흔히 말하는 ‘이 자리를 빌어…’는 틀리고,
‘이 자리를 빌려…’가 맞습니다.
제가 우리말 편지를 쓰고 있으니까,
이 편지를 빌려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자고 외치고 싶습니다.
아니 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