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삭-모정(母情)

제 목
첨삭-모정(母情)
작성일
2000-03-8
작성자

(1) 빨래를 널다가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의 얼굴이 깊은 호수의 눈처럼 짙어서 한 동
안 넋을 잃고 그대로 서 있었다.
(2) 불어오는 바람, 눈부시게 쏟아지는 빛이 웬 일인지 어제의 그것들과 다른 것 같
아 괜히 콧날이 시큰해진다.
(3) 매일매일 자잘한 시간들에 둘러 쌓여 난 계절을 잊고 살았다.
(4) 아니 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는 게 더 옳은 말이다.

(5)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것
들에 공감을 하면서 모든 감정들을 속으로만 삭이고 음울하게 살아왔던 지난 몇
년…….
(6)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 하지만 마음 먹은 대로 쉬운 일은 아니다.
(7) 생로병사는 자연의 섭리라 체념하지만 항상 그 자리에 계셔야 되고 찾으면 금방
반응이 있어야 되는데 불러도 불러도 메아리되어 되돌아 보니 눈물만 주루룩.
(8) 날이 갈수록 해가 바뀌어도 생각은 더욱더 간절해지고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9) 눈과 귀는 멀고 모든 생각과 시간이 정지된 채 수렁으로 깊이깊이 헤어나지 못하
고 있는 상태라 미지의 시간들이 운명적으로 나에게 밀려들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시
간 속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의 자리로 와야겠지.
(10) 화단에 피어 있는 키 큰 해바라기의 선명하게 노오란 얼굴이 오늘따라 관심있게
보여진다.
(11) 노오란 얼굴에서 수많은 시간의 꿈들이 알알이 씨앗으로 영그는 기쁨을 해바라
기, 저 혼자만 느끼고 있겠지.
(12) 저녁, 예쁜 식탁보로 단장한 식탁 위에 촛불을 켜놓고 굽 높은 잔에 국화향 그윽
한 국화주 한 잔을 가득 부어 놓았다.
(13) 마시지는 않더라도 그래야만 될 것 같은 기분에.
(14) 그리고는 촛불처럼 스스로를 태우는 사랑을, 인생을, 깊이 생각해 본다.

고친글 :

엄마가 그리운 가을

(1) 빨래를 널다가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이 깊은 호수처럼 짙어서 한 동안 넋을 잃
고 그대로 서 있었다.
(2) 불어오는 바람, 눈부시게 쏟아지는 빛이 웬 일인지 어제와 다른 것 같아 괜히 콧
날이 시큰해진다.
(3) 매일 자잘한 시간에 둘러 쌓여 계절을 잊고 살았나 보다.
(4) 아니, 시간을 잊으려 애쓰며 살았다는 게 더 옳은 말인지 모른다.
(5) 사람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엄마가 갑자기 돌아
가신 뒤 절실하게 느껴졌다. 살아 계실 땐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처럼 믿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안 계셨다. 엄마가 쓰시던 물건이 그대로이며 세상은 여전히
잡다하고 번거로운데 우리 엄마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가 계실 땐 무심했던 일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그
사람이 없어도 꼭 해야 할 일이 무에 그리도 많은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많은 사람
을 만나야 했다. 맏이 된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감정을 속으로만 삭이고 음울하
게 살아야 했다.
(6)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다짐하였으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7) 생로병사는 자연의 섭리이리라. 그래도 엄마 자리에 엄마가 항상 계시고 내가 아
쉬울 때 금방 대답해 주시면 좋으련만, 지금은 불러도 불러도 내 목소리만 메아리되
어 되돌아 올 뿐이다.
(8) 몇 년이 지났어도 날이 갈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더 간절해지고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9) 지금은 눈멀고 귀 먹어 내 모든 생각과 시간이 엄마가 살아 계시던 과거에서 정지
된 채 수렁에 깊이 빠져 있는 것 같다.
(10) 화단에 피어 있는 키 큰 노란 해바라기가 오늘따라 선명해 보인다.
(11) 지금 해바라기는 수많은 꿈들이 알알이 씨앗으로 영그는 기쁨을 느끼고 있을까?
(12) 저녁 때 식탁을 예쁜 식탁보로 단장하고 촛불을 켜놓았다. 그리고 굽 높은 잔
에 향기 그윽한 국화주 한 잔을 가득 부어 놓았다.
(13) 마시지는 않더라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14)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엄마의 사랑과 인생을 깊이 생각해 본
다. 부딪쳐야 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면 이제는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돌아 와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