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삭-웃고 우는 오디오

제 목
첨삭-웃고 우는 오디오
작성일
2000-07-28
작성자

최00 (주부)

(1) [에이미,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줄 아니? 그 이유는 멋있는 오디오를 샀
기 때문이야. 지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음악을 듣고 있어. 기분이 지붕을 뚫고
날아가고 싶고 빙글빙글 춤을 추고 싶어.]
(2) 이 글은 1995년 6월 19일 둘째 딸 일기장에서 따온 것이다.
(3) 정녕 ‘오디오 타령’을 13년이나 노래했던 나는 한 줄의 일기도 쓰지 못했다.
(4) 기쁨이 너무 큰 탓일까?
(5) 오디오를 사던 날, 남편은 이렇게 고백했다.
(6) “사실은 고등학교 선배에게 CD를 한 세트 샀는데, 집에 가져올 수가 없었어.”
(7) 그것을 바라 본 선생님들이 “아니, 오디오가 없다니오!” 이런 이야기를 했단다.
(8) 그래서 가장으로서 아내에게 선물을 생각했고…….
(9) 어쨌든 오디오 구입은 복잡한 나의 가계부에서 지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횡재임에
는 틀림이 없다.
(10) 그리고 그는 연거푸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를 했다.
(11) “지금 음악 듣고 있어?”라고………
(12) 나는 벙어리 오디오에 수화기를 바짝 대고 “오디오 바꿔 줘?”하고 빈정거렸지
만, 내심으로는 그를 헤아릴 수 있었다.
(13) 그런데 나는 참으로 이상하다.
(14) 그토록 원했던 음악의 소리를 보름이 넘도록 듣지 않으니…..
(15) 겨우 알비노니 <아다지오>, 모차르트<피가로의 결혼> 두 곡만을 감상할 뿐이다.
(16) 오히려 컴팩트 디스크, 레코드, 테이프를 골고루 만지는 남편과 두 딸과는 달
리 나 혼자 도시 가스 공사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17) 또 이미 정들어 버린 고장난 라디오보다 새로운 검정 오디오가 낯설기도 하다.
(18) 그렇지만 장마철이 지나면 ‘오디오 환영식’을 꼭 갖고 싶다.
(19) 안개꽃 위에 장미 한 송이 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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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삭

(1) ‘에이미’가 누구일까? 나중에 알고 보니, 딸내미가 인형에 붙인 이름이라네. 그렇
다면 그 다음 2번 문장에 슬쩍 한 줄을 보태 ‘에이미’를 설명해주어야 한다. ‘기분
이 – 날아가고 싶고’가 아니라, ‘기분이 – 날아갈 것 같고’라야 옳다.
(2) 일기에서 인용했다해도 ’1995년 6월 19일’이라고 아주 정확히 써야 할 필요가 있
을까? 결혼하고 오랫동안 오디오가 없었다면 ‘결혼하고 13년이 되던 1995년’ 정도가
더 확실하고 정확한 표현이다. 그렇지 않으면 ’5년전인 1995년’ 정도로만 표현해도 충
분하다. – (사족) 딸내미 일기장을 엄마가 평소에 몰래 보고 있는가 보다.

(3) ‘정녕’은 ‘꼭, 틀림없이’라는 뜻을 지닌 말이다. ‘막상’으로 써야 한다. ‘노래하
던’도 맞지 않다. 오디오 사자고 남편에게 평소 요구한 것이면, ‘바가지 긁다, 조르
다’ 등이 더 정확한 말이다. ‘한 줄의 일기’는 영어식 표현. ‘일기 한 줄’이라고 해
야 옳다.
(6) 신문 경제면에 보면 ‘은행에서 CD를 어쩌구저쩌구’ 하던데….. 여기서 시디는 음
악 시디이겠지. 그렇다면 ‘음악 시디, 컴팩트 디스크’ 따위로 바꾸어야… ‘고등학교
선배’가 왜 나올까? 독자를 궁금하게 만든다. 그냥 ‘어떤 사람한테서’로. 그리
고 ‘왜’ 가져올 수 없었는지 남편이 말한 것을 한 마디 보태야 7번 문장에서 동료들
말과 연결된다.

(7) 소리는 ‘들어야’ 한다. 또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왜 나올까? 알고 보니 이 주부
남편이 교사라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독자에겐 왠 선생님? 그러므로 ‘그 소리
를 들은 동료들이’ 정도로 바꾸어야 한다.
(8) ‘그래서’라는 접속어가 영 어색하군. 어떤 사건이 생략되었다. “이러저러해서 남
편이 어떤 선물을 생각하다가 ‘오디오’를 떠올렸다.”같은…… 그리고 문장을 끝까
지 완성할 것. 이 아래에 몇 문장도 마찬가지임.

(9) ‘복잡한’이라는 단어도 독자를 궁금하게 하는 단어이니 삭제할 것. ‘횡재’도 아
주 거친 단어이다. 부부끼리 살면서 ‘내 돈, 네 돈’ 따지며 ‘횡재’라니…..
(10) ‘그는’은 여기에서 ‘남편’을 가리키는 것이겠지.
(11) ‘-라고 물었다.’를 보태자.

(12) ‘벙어리 오디오’가 무슨 뜻인지? 안 켰다는 뜻인지, 고장났다는 뜻인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인지? 자상한 남편한테 왜 빈정거려? 그리고 내심으로 ‘뭘’ 헤아렸을꼬?
본인은 알고 있겠지만, 말하지 않으면 독자는 모른다.
(13) ‘나는 참으로’를 빼자. 수필의 주어는 거의 ‘나’이기 때문에.
(14) 영어식 문장. ‘그토록 음악을 좋아했으면서도 정작-’으로 바꾸자.

(15) 두 곡일망정 듣고 있다. 그렇다면 앞에서 안 듣는다고 한 것은 무슨 소리를 하려
고 한 것인지?
(16) ‘오히려’는 뭐와 비교하여 붙인 접속어일까? 빼는 것이 낫다. ‘도시 가스 공사
비’가 갑자기 등장한 이유는? 오디오를 쓰면 되잖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오고가
는 생각만 가끔 잡아 서술하는 식이다. 워매, 한 문장에서 또 다른 문장으로 막 건너
뛰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네.

(17) 왜 낯설까? 사람들은 대개 새 것을 좋아하는데?
(18) ‘그렇지만’으로 또 뒤집고 있음. 또 건너뛰고 있음.
(19) 소녀 취향, 어쨌든 예쁘게 마무리하려는 버릇.

(20) 제목 – 오디오는 무생물이라서 웃거나 울지 않는다. 뭘 말하려고 했을까? ‘오디
오에 울고 웃고’. 그런데 읽어보니 ‘오디오’ 때문에 울고 웃은 이야기가 아니라, 평소
에 오디오를 가졌으면 했는데, 막상 생기니까 시큰둥하더라는 이야기. 내 마음이 변덕
스럽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오디오를 샀는데…’ 정도가 적당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