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앞둔 고민-김현진
이름 : 김현진 ( manifess@hitel.net) 날짜 : 2001-05-06 오후 5:33:49 조회 : 189
다시 5월이 돌아왔다. 학생때는 5월하면 광주민주화운동이니 하는 거창한 말들이
항상 먼저 떠 올랐는데 발령받고 나서는 얼마 안있어서 5월이면 제일먼저 떠오른
말이 ‘스승의 날’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스승’됨이 자랑스럽거나 남들이 나를 존경해서 기분좋은 느낌으로 떠오른 말이 아니라서 문제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항상 내가 소위 ‘스승’이라는 거창한 반열에 올라갈만한 자격이 된다고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다. 굳이 이름을 바꾼다면 그냥 평범한 ‘교사’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왜 5월 15일을 교사의 날이나 교원의 날이 아닌 스승의 날이라고 했는지 나는 사실 조금 의문스럽고 그 불온한 저의에 경계심마저 늘 가지고 있다.
아무튼 그 스승의 날이 본격적으로 싫어진 것은 바로 그 날 주고받는 여러 가지 선물이나 촌지와 같은 문제들이 제기되면서 부터이다. 몇 년 전부터 어떤 호들갑스러운 교장님들은 스승의 날에 학교 교문까지 걸어잠구면서 생 쑈를 벌렸다.
학부형들도 스승의 날에 선생에게 갖다바칠 선물이니 촌지때문에 고민이라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더니 어떤 티비뉴스에서는 스승의 날에 받은 선물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는 장면도 나온적이 있었다.
그 때 일을 전후로 나는 아이들에게 스승의 날 선물 금지령을 공포했었던 것 같다. 명목은 참으로 그럴싸 했다. 스승이란 말은 귀한 말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들을 자격이 없다. 게다가 니들은 아직 졸업도 안했으니 제자라고 감히 칭할수 없는 처지이다. 또 니들이 선물을 가지고 오면 못가지고 올 수 밖에 없는 애들은 마음에 상처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선물은 받은 것으로 할테니 가져오지 마라.
그러다 좀 더 짱구를 굴려서 다음과 같은 수법도 써 보았다. 니들이 스승의 날에
줄 선물은 니들이 졸업하고 난 후인 내년에 가지고와라. 그땐 기쁜 마음으로 받으마……..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가증스럽기 이럴데 없는 수법이다. 혼자 잘난척 할거라고 그랬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교사들은 스승의 날에 선물받아도 난 하나도 안 받았다. 세상아 날 봐라. 난 떳떳하고 청렴한 교사다….
작년까지는 이렇게 혼자 개뿔도 잘난것도 없는 놈이 잘난척을 하면서 유난과 호들갑을 떨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좆나게 쪽팔리는 일이 아닐수가 없다. 어떤 교장들이 스승의 날에 교문걸어잠그면서 벌린 쑈랑 다를바가 무엇인지 모르
겠다.
하지만 올해도 여전히 고민스럽다. 스승의 날 자체를 난 인정할 수 없다. 하루 스승의 날 정해놓고 포상하고 뉴스에 특집 프로그램 방영한다고 교사에 대한 인식과 교사들의 자괴감은 바뀌지 않는다. 게다가 스승이라니…그 불온한 명칭이라니.
이 땅의 40만명이나 되는 교사들을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규정지어놓고 거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칼질해대려는 놈들의 저의가 느껴진다. 명색이 선생이 말이야… 교사가 이래서 되겠어…어쩌고…하는 저들의 잣대.
솔직히 말해서 5월 15일은 결근을할까도 생각해 봤다. 아이들이 갔다주는 선물을
받고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어야 그 놈들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겠지만 그럴 마음은 죽어도 안생긴다.
그냥 없애면 제일 좋겠다. 진도도 늦은데 평소처럼 수업이나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이고… 올해 스승의 날은 어떻게 지혜롭게 보내야 할지… 새로운 숙제거리만 생겨버렸다.
하이텔 교사동호회에서 퍼옴